2017년 12월 15일 세계는 두가지 사건으로 들끓었다. 하나는 거대 영화 산업의 서막을 열어낸 조지 루카스필름의 스타워즈가 여덟번째 시리즈 라스트 제다이가 역대 영화 오프닝 수익 사상 (북미 기준) 2위라는 화려한 성적으로 선을 보였기 때문이고(1위는 같은 작품의 시리즈 7편 깨어난 포스) 두 번째 사건은 그런 루카스 필름을 인수했던 월트디즈니사가 거대 미디어 회사인 21세기폭스사의 영화와 TV사업 부문을 인수했기 때문이었다. 이 두가지 사건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미디어산업은 물론 콘텐츠라는 영역에 있어서 역대급의 연쇄효과를 일으키는 사건이기 때문에 특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한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주기에 특별히 이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우선 월트디즈니의 21세기폭스사 인수를 살펴보자. 월트디즈니 하면 여전히 백설공주나 피터팬, 라이언킹의 고전 동화 애니메이션이나 테마파크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실상 이 회사는 ‘무형의 세계’를 사들이는 과정에 있다. 우리에게는 토이스토리로 익숙한 픽사가 2006년 디즈니에 인수되었고, 2009년에는 수퍼히어로의 양대산맥 DC와 마블 중에서 마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인디아나존스와 스타워즈의 루카스필름마저 사들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소년 소녀들의 꿈과 모험의 옛날 동화적인 세계에서 현대적인 토이스토리가 더해지고,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수퍼 히어로들이 지구를 지키는 어벤져스가 결성된 것이다. 여기에 이번에 21세기폭스사가 가세하면서 아바타에 혹성탈출, 게다가 엑스맨까지 이제는 그 세계를 우주 밖으로, 시공간의 경계를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지점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월트디즈니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 때 미국의 최대 케이블 미디어회사 컴캐스트에 인수위협에도 시달리고 슈렉의 드림웍스에도 대패했다며 몰락한 제국 평가를 받아왔었다. 하지만 2005년 밥 아이거 신임CEO 취임 후 연속적이고 공격적인 M&A를 통해 동종 업계 중 어려운 상황에 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인수하며 재기를 노렸다. 그간 많은 비판이 공존했었으나 우리는 월트디즈니사와 밥 아이거의 새로운 시도 속에서 두가지 교훈을 배웠으면 한다. 



첫 번째는 리부팅(Rebooting)이다.

2017년 여름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스파이더맨의 팬들 사이에서 꽤나 격론이 벌어졌다. 제작사간의 판권 관련 분쟁도 있었지만 핵심은 이야기의 세계관이 크게 뒤바뀐 것 때문이었다. 기존의 팬들이 알고 있던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암울한 스파이더맨 세계관이 톰 홀랜드라는 하이틴 배우만큼이나 완전히 가볍고 유쾌함으로, 그리고 아이언맨을 비롯해 각종 어벤져스 주인공들이 공존하는 세계(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시리즈로 이어지던 영화가 갑자기 두 개의 다른 세계 속에 존재하며 헷갈리거나 끊어지는 듯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영화에서는 흔히 리부팅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존 왓츠 감독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섞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공존한다


리부팅된 스파이더맨 홈커밍


지금 이 영화를 보는 10대 아이들에게 스파이더맨은 톰 홀랜드의 홈커밍이다. 두 개의 세계는 섞이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것으로 공존하고 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라며 말이다.


나는 그의 이 말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빗대는 말인줄 알았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언젠가 우리의 전통은 고루한 것이 되었고 옛것이 되었다. 또한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고 변화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그럴수록 우리는 전통을 멀게만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복도 역시 한 때 그런 취급을 받았다. 특별한 날에 입어야 하는 것이고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복은 한국 사람이 입는 옷이었다. 그것은 어떤 특정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래 들어 생활 한복, 개량 한복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상 복으로서 다시금 성장하면서 한복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만약 한복이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만 취급되었다면 그 운명은 불보듯 뻔한 것이 아니었을까.


냉전시대의 상징으로 등장한 수퍼맨과 캡틴아메리카의 프로파간다가 이제는 아재가 된 386세대에게 통할까. 아재의 인디아나존스와 스파이더맨이 밀레니엄세대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이해될 수 있을까. 결국 시대는 변하고 변할것 같지 않은 연속성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을 내 안에서만 찾기보다는 새로운 생각과 관점의 것을 받아들여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두번째는 세계관이다.

결국 디즈니가 사들이는 것은 회사이지만, 본질은 그 회사가 갖고 있는 이야기들이며 보다 원론적으로는 그 이야기를 잉태시키는 세계관이다. 이미 언급한것처럼 유네스코 문화유산1호가 파르테논 신전인 이유는 그것의 건축학적 가치나 고고학적 가치가 아니라 거의 모든 그리스로마 신화들이 이곳을 기반으로 탄생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하고 그 생각은 이야기를 통해 실제화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세계를 만들고 세계는 다시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우주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이유로 우주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성장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월트디즈니의 21세기폭스는 그래서 단순히 경쟁분야의 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강력한 콘텐츠 자산을 가진 기업을 사 들이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그런 황금알을 잉태하는 거대한 세계를 품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예전 SK텔레콤 광고에서 집행한 광고중 '사람은 꿈꾸고 기술은 이룹니다’라는 카피가 지금처럼 필요한 때가 없을 것 같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열풍 속에 우리는 ‘기술’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위협하며 해방할 것 처럼 말하지만 정작 기술은 우리가 꿈꾸는 것들을 실체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다시금 꿈꾸고 나눌 수 있고 꽃피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며 세계관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2017년 12월 15일, 애플과 구글의 등장과 경쟁처럼 우리는 이제 지구에서 가장 큰 세계관을 집어삼키고 그 속에서 다시금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두 개의 기업 ‘넷플릭스’와 ‘월트디즈니’의 마주함을 목도한다. 콘텐츠의 강자 월트디즈니는 새로운 우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면서 유통망을 준비했고, 콘텐츠 유통의 강자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로 우주를 개척하며 디즈니와 격전을 펼칠 것이다. 


결국은 다시금 원천을 바라보게 된다. 인문학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꿈꿀 수 있고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은 어디에 있는가.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산업이 문제가 아니다. 다시금 사람이다. 우리 내면의 잠재되어 있는 가장 강력한 근원을 탐험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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